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문단 편집) ==== 외교 정책 ==== 대외적으로는 반프로이센 정책을 추진했다. 옐리자베타 여제는 개인적으로 안나 여제 시절 영향을 받아 독일계 발트인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으며 [[프로이센 왕국]]과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를 매우 싫어하여,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 스웨덴은 [[30년 전쟁]] 시절 합스부르크군을 쳐바르고, 러시아와는 표트르 대제 이후 계속 전쟁 상태였으며, [[오스만 제국]]은 [[합스부르크 제국]]과는 [[발칸 반도]], 러시아 제국과는 [[캅카스]],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충돌했다.]라는 공동의 적과 혐오 대상을 공유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성향이 맞았기 때문에 곧 [[동맹의 역전|동맹을]] 맺고 [[7년 전쟁]]에 참가했다. 여제는 희한할만큼 본 적도 없는 프로이센 왕을 극도로 싫어했고, 이를 안 프랑스에선 공식 제안 전 몰래 동맹 의사를 타전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전쟁 목적은 사실상 점유하고 있던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 리보니아와 [[쿠를란트-젬갈렌]]을 정식으로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키는데 있었는데, 프로이센의 [[프로이센 공국]]을 할양받아서, 리보니아-쿠를란트와 교환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동맹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다만 실제로 옐리자베타가 조금 더 살아서 러시아가 7년 전쟁을 끝까지 이었다면 동맹국이 환영하든 말든 이 목표를 이루었을수도 있다. 옐리자베타가 사망할 당시 러시아가 가장 건재하고 피해가 별로 없었으며 발언권도 쌨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표트르 3세처럼 패전국이나 할 법한 협상을 할 필요까지도 없이 영토를 못 얻을바에야 그냥 배상금만 왕창 받아내고, 전쟁 이전 상태로 회귀하거나 더 나아가 여차하면 프로이센을 돕겠다고 협박할 수도 있다.] 7년전쟁 때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위성국으로 만들고 스웨덴은 오히려 프로이센의 적국으로 참전하는 등 프로이센에 이겨봤자 별로 얻을 게 없는 상태였고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군대에 몇 번 타격을 주고 [[베를린]]을 일시적으로 함락[* 완전히 정복한 것은 아니고 베를린에 근접하자 베를린 시에 사례금을 받고 공격을 면제 했다. 야전에서 공성으로 전환하면 몇 달 간 장비배치에 배후의 위협도 있을 뿐더러 공성전에서 공격자의 피해도 많기 때문에. 어쨌든 공략한건 공략한거...] 시키는 등 선전도 했지만 러시아의 피해도 막심했다. 러시아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조른도르프에서도 프로이센군은 3분의1 정도의 손실, 러시아군은 병력의 절반의 손실을 입었다. 콜베르크 요새를 공략하기 전에는 보급의 어려움으로 겨울마다 폴란드로 철수해서 월동을 지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